후샹 인물
후난은 문화 예술이 융성하고 뛰어난 인재가 끊임없이 배출되어, 일찍이 '유초유재, 우사위성(惟楚有材,于斯为盛)'이라는 전성기를 누렸다. 선진 시대 후난에 유배된 애국 시인 굴원부터 서한의 저명한 정론가 가의, 동한의 제지술 개량자 채륜,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 구양순과 회소, 북송 이학의 비조 주돈이, 후난에서 강학하며 도를 전한 남송의 성리학자 주희와 장식, 명대 차링 시파의 영수 리동양, '동양의 헤겔'로 불리는 사상가 왕부지에 이르기까지, 후샹 인재들이 연이어 등장하여 별빛처럼 찬란했다. 근현대에 이르러 후난은 유신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성이자 신해 무창봉기에 가장 먼저 호응한 지역이다. 후샹 지역은 역사에 길이 빛나는 걸출한 인물들을 대거 배출했다. 청말 경세파 대표 인물 양강 총독 도주, '세계를 향해 눈을 뜬 첫 사람'인 계몽 사상가 위원, 청대 중흥의 명신 증국번과 좌종당, 유신 지사 담사동과 당재상, 신해 원훈 황흥, 채악, 송교인, 민국 초대 민선 총리 웅희령 등이 연이어 나타났다. 신민주주의 혁명 시기, 후난은 전국 농민 운동의 중심지이자 중국 혁명의 중요한 발상지이며, 항일 전쟁의 중요한 전선이었다. 추수봉기, 상남폭동, 상식봉기, 평강봉기, 퉁다오 전병, 즈장 수복 등 유명한 역사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마오쩌둥, 류사오치, 런비시, 펑더화이 등 무산계급 혁명가들은 중국 공산당 창당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탁월한 기여를 했다. 신중국 초기 수여된 10대 원수 중 3명①, 10대 대장 중 6명②, 57명의 상장 중 19명③, 177명의 중장 중 45명이 후난 출신이다. 따라서 후난은 '위인의 고향', '장수의 고장', '혁명 성지', '붉은 요람'이라고 불린다. 개혁개방 새 시대에 이르러 후야오방, 주룽지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이 중국 개혁 발전의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이 밖에도 '세계 잡종 벼의 아버지' 위안룽핑, '시험관 아기의 어머니' 루광슈 등 저명한 과학자, 톈한, 치바이스, 황융위 등 예술가, 선충원, 저우리보 등 문학가, 슝니, 류쉬안 등 세계적인 체육 명장, 그리고 인민을 위해 헌신한 공산주의 전사 레이펑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탁월한 재능과 지혜, 품덕으로 중국은 물론 세계 역사에 짙은 필치로 찬란한 장을 써 내려갔다.
①10대 원수 중 후난 출신 3인: 펑더화이(샹탄현), 허룽(쌍즈현), 뤄룽환(헝동현)
②10대 대장 중 후난 출신 6인: 쑤위(후이퉁현), 황커청(융싱현), 천겅(샹샹시), 탄정(샹샹시), 샤오진광(창사시), 쉬광다(창사현)
③57명의 상장 중 후난 출신 19인: 리즈민(류양), 쑹런충(류양), 탕량(류양), 왕전(류양), 양융(류양), 푸치우타오(핑쟝), 쑤전화(핑쟝), 중치광(핑쟝), 간쓰치(닝샹), 타오즈웨(닝샹), 천밍런(리링), 덩화(천저우시 베이후구), 리타오(루청), 주량차이(루청), 쑹스룬(리링), 양더즈(리링), 리쥐쿠이(롄위안), 펑사오후이(샹탄), 샤오커(쟈허)
원문 출처: 후난성인민정부문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