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곡예 개요
후난(湖湘)의 전통 연극 예술은 유구한 역사와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극종의 다양함, 풍부한 창법(성강), 그리고 수많은 명가와 명작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후난의 여러 극종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것은 고강(高腔) 이다. 고강은 익양강(弋阳腔)과 청양강(青阳腔)의 기본적인 창법과 특징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승 과정에서 후난 지방의 언어와 음악이 융합되면서 뚜렷한 지역적 특색을 갖게 되었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는 곤곡(昆调)과 청양강이 동시에 후난에 전해졌다. 이후 가장 늦게 전래된 대형 극종의 성강은 탄강(弹腔, 일명 ‘난탄’)으로, 청나라 이후에 후난에 들어왔다. 이로써 고강·곤강·탄강이 후난 지방 대극(大戏) 극종의 기본 성강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민간 소극(小戏)은 대부분 민간 가무와 백희(百戏)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나희(傩戏)로, 늦어도 강희 연간 이전에는 이미 형성되었으며, 이 원시적 극종은 다른 민간 소극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화고희(花鼓戏), 양희(阳戏) 등은 대체로 가경·도광 연간에 형성되었는데, 초기에는 등조(灯调)를 불렀고 이후 패자조 (샹남), 타라고강(샹북)이 더해졌으며, 여기에 사천 지역의 창법까지 유입되면서 점차 완성도 높은 성강 체계로 발전했다. 청말에 이르러 후난의 전통극은 한층 더 발전했다. 1901년, 명배우 왕딩바오가 한커우에서 경극 극단을 초청하면서 경극이 후난에 전래되었다. 신중국 성립 이후에는 월극(越剧)과 동극(侗戏)도 차례로 유입되면서, 후난의 희곡계는 점차 “백화가 만발한” 풍성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후난의 전통 설창예술은 당나라 시기에 기원했다. 민족 및 민간 전통 가조(歌调) 외에도, 장쑤·저장 지역에서 유행하던 소령(小令)과 소조(小调) 등이 차례로 후난에 전해졌다. 송나라 시기에 이르러 후난에서는 이미 곡예가 상당히 유행했으며, 청대에는 독자적인 특징을 형성하면서 더욱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청나라 초기의 사상가 왕촨산(王船山)은 「어고사(鱼鼓词)」 27수를 지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어고(鱼鼓)’는 곧 ‘어고(渔鼓)’로, 후난의 대표적인 곡예 장르 중 하나이다. 청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문 예인들이 더욱 늘어났을 뿐 아니라, 창본(唱本)을 인쇄하는 작업장까지 등장했다. 청대 희곡 작가 양언수(杨恩寿)는 동치 연간 장사의 유명 예인 장보(张跛)를 위해 「소전(小传)」을 지으며, 그가 공연한 「유령취주(刘伶醉酒)」의 한 대목을 “매우 생동감 있고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이는 당시 후난 곡예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20세기에 들어 후난의 곡예는 풍부한 전통 레퍼토리를 보유했을 뿐 아니라, 현실 생활도 즉각 반영하며 점차 뚜렷한 시대적 특색을 갖추게 되었다. 후난의 특징과 예술 수준을 대표하는 곡예 장르로는 주로 탄사(弹词·장사·이양·샹탄·류양 계통), 사현(丝弦·창더·진스·우강·천시·류양 계통), 순구류(顺口溜), 단인라고(单人锣鼓), 샹성(相声) 등이 있다. 소수민족 곡예로는 동족의 가비파(嘎琵琶), 레이취에(雷却), 간제(甘结), 묘족의 파이화(排话), 구라오화(古老话) 등이 있다. 신중국 성립 이후 후난의 곡예(소수민족 곡예 포함)는 전승과 혁신 속에서 더욱 큰 발전을 이루었다.
원문 출처: 후난성인민정부문호망